내소사의 겨울

눈 쌓인 풍경은 산과 나무 같은 자연물은 물론이거니와 마을과 궁궐, 절 같은 인공물과도 잘 어울린다. 그중에서도 산사의 설경은 나그네의 발길을 오래도록 붙잡는 마력이 있다. 설경이 잘 어울리는 곳으로 부안 내소사가 있다.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이곳은 자연미와 인공미가 조화를 이룬 것이 특징이다.
내소사를 찾아가는 길은 창 밖의 풍경이 아름답다. 다양한 종류의 젓갈로 외지인들을 유혹하는 곰소의 젓갈 판매장들을 지나고 겨울잠에 깊이 빠진 염전을 지나면 내소사 입구에 다다른다. 여행자를 제일 처음 맞이하는 건 듬직한 일주문. 마음을 하나로 가지런히 하고 속(俗)의 세계에서 승(僧)의 세계로 발을 내디딘다.
일주문을 넘자마자 길 양편을 빼곡하게 메운 전나무숲이 눈에 들어온다. 여전히 녹음을 자랑하고 있는 전나무가 새하얀 겨울옷을 걸쳐 입었다. 가지런한 매무새로 하늘높이 뻗어 올랐는데 높이 20~30m는 얼추 넘어 보인다. 내소사에는 예로부터 울울창창 전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그 많던 전나무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모두 반출이 되었고 지금의 전나무는 그 때 다시 심은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일주문에서 전각으로 향하는 길 500m 양편으로 수령 100~150년에 이르는 전나무 1,000여 그루가 빼곡하게 자라 관광명소가 되었다.
내소사는 백제 무왕 34년(633년)에 처음 세워진 절이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고 그 후로도 몇 차례 중수와 중건을 거치면서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금당격인 대웅보전에는 관음조가 단청을 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세월의 풍파에도 불구하고 문살의 꽃잎 문양이 활짝 피어 눈길을 끈다.
처마를 활짝 펼치고 중생들에게 눈바람 피할 공간을 만들어주는 대웅보전, 부처님이 잠들어 계시는 고졸한 멋의 3층 석탑, 천년의 세월을 지켜 온 높이 20m에 둘레 7.5m나 되는 느티나무, 말없이 이들을 바라보며 수행 정진 중인 무설당(無說堂)……. 설경과 어우러진 내소사 경내는 눈길 두는 곳마다 마음이 머물고 카메라 향하는 곳마다 촬영 포인트이다.

내소사 경내 천년 수령의 느티나무는 일주문 밖에 있는 700년 된 느티나무와 조화를 이룬다. 경내의 천년 된 나무는 할머니당산, 일주문 밖의 700년 된 나무는 할아버지당산이라고 하여 매년 음력 정월 14일에 당산제를 지낸다. 내소사당산제 또는 마을 이름을 따 '입암당산제'라고 부르는 이 제의는 사찰 주도로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는 점이 다른 지역의 당산제와 차이점이다.

정월에 만나는 특별한 민속축제, 위도 띠뱃놀이

입암당산제 외에도 부안 지역에는 많은 민속제의가 전해지고 있다. 특히, 변산반도로 인해 삼면이 바다와 맞닿아 있는 부안은 어촌의 전통 제의문화가 발달했다. 거친 바다를 삶의 무대로 삼아온 어촌 사람들에게 있어 바다는 공경의 대상이자 정복의 대상이었다. 해마다 정월이면 푸짐하게 상을 차려놓고 용왕신을 달래주며 한 해의 풍어를 기원하였던 것이 비단 부안 지역만의 문화는 아닐 것이다.
정월 초사흘(음력 1월 3일)에 격포 앞바다 위도 대리마을에서 열리는 띠뱃놀이는 국가지정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유명한 풍어제 행사다. 띠뱃놀이라는 명칭은 제의 마지막에 띠로 엮은 배를 만들어 띄워 보낸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이때는 마을 주민들은 물론이고 육지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한바탕 잔치판이 펼쳐진다.
위도는 부안 격포항에서 대략 15km 떨어졌는데 요즘 운행하는 여객선으로도 40여 분 걸리는 거리다. 고슴도치처럼 생겼다고 하여 위도(蝟島)란 이름이 붙었는데 고슴도치 가시만큼이나 아픈 사연을 많이 지녔다. 1993년에 위도를 출발해 격포항으로 돌아오던 여객선이 침몰하여 300여 명이나 목숨을 잃은 '페리호사건'이 있었는가 하면, 1931년 위도 치도리 앞바다에서 연이은 태풍으로 수백 척의 어선이 침몰하여 600여 명이 몰살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아픔이 많은 섬이다. 그런 섬에서 열리는 풍어제이기에 그 감흥이 남다르다. 흥과 한이 어우러진 축제는 어촌의 다양한 민속 풍습과 풍물, 민요 등을 접할 수 있어서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많은 관광객들이 자리를 지킨다. 위도띠뱃놀이를 보려면 음력 1월 2일에 입도하여 마을에서 하룻밤을 자고 3일 아침에 열리는 행사를 처음부터 구경하거나 아니면 1월 3일 첫배로 들어가 구경하는 방법이 있다. 행사 당일에 입도를 하면 앞부분 1시간가량을 놓치게 된다. 하루 일정으로 열리는 행사는 위도에서 출발하는 막배 시각에 맞춰 끝이 나므로 격포항 기준 하루 일정으로도 둘러보고 나올 수 있지만 섬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싶다면 1박2일 일정이 좋다.
위도에는 해수욕장이 여럿 있어서 철지난 겨울 바다의 운치를 접할 수 있고 딴지도 쪽에서 올라오는 서해 일출도 감상할 수 있다. 특별한 명소는 아니지만 해안선을 따라 걷는 호젓한 마을 산책과 옹기종기 모여 앉은 어촌의 민가들을 구경하는 것도 섬 여행의 재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