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신이 처한 불행 앞에 어떤 생각을 먼저 하게 될까. 처음부터 그저 초연히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2000년에 결혼해서 2008년까지는 순탄한 생활이었다. 2004년까지는 나도 다니던 직장을 계속 다녀 맞벌이를 해서 차곡차곡 돈도 모았고, 미래를 위한 준비를 나름대로 열심히 하면서 살았다. 그때는 젊어서였을까 보험이나 연금이라고 하면, 내가 언제 어떻게 받게 될지도 모르는데 뭘... 하는 생각으로 그냥 지출이라는 생각밖에는 큰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 혜택이라는 걸 받는 일이 먼 훗날의 일도 남의 일도 아니게 되었다. 남편이 신장 투석으로 인해 장애 2급 판정을 받게 된 것이다. 나는 그때 당시 겨우 두 살이던 아들과 함께 살아가야할 앞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가장을 잃은 것 같은 불안감으로 몹시도 괴로웠다. 시부모님과 함께 처음으로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고 떠나기 며칠 전 남편은 만성 신부전증 말기 판정을 받았다. 남편의 몸이 계속 안 좋아지고 회사도 다닐 수 없게 되자 남편은 2009년도에 조그만 호프집을 하나 차렸는데 빚만 남긴 채 실패를 하고 말았다. 그리고 둘째까지 태어나고 형편은 나날이 기울어가기 시작했다. 가게가 잘 되지 않고, 돈만 까먹고 있을 때, 우리한테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남편에게 지급되는 장애연금 뿐이었다.

 한참 어려운 2009년 8월에 소급분이라며 400여만 원의 연금이 지급되고 그 뒤로 다달이 41만 3,800원씩이 지급되었다. 그때 우리 형편이 얼마나 좋지 않던지 빚만 늘어가고 있는 때라 남편의 병원비와 약값, 투석약비용도 부담스러운 때였다. 그런데 그 금액은 충분히 충당하고도 남을 만큼의 연금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도움을 받은 듯 다행스러운 마음이었다. 그다지 믿음직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연금제도가 이렇게 현실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니... 빚이 점점 늘어가 부담스러운 마음뿐이었는데, 그나마 연금이라도 꼬박꼬박 지급되어 병원비 걱정만은 안 할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었다.

 지금은 남편의 건강이 너무 좋지 않아서 가게도 정리하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수입이 전혀 없어 두 아이를 키우며 네 식구가 살아가는 데 경제적인 문제는 정말 큰문제가 아닐 수가 없다. 지금 현재 그나마 우리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는 것은 다달이 꼬박꼬박 들어오는 국민연금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국민연금으로 인해 도움을 받은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물론 직접적인 도움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국민연금 제도로 인해 받은 도움이니, 국민연금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도움이었다. 수입이 없어 살고 있는 집 월세 내기가 너무 벅차던 차에 작은 전셋집을 구하게 되었다. 작고 오래된 아파트지만 네 식구 살기에는 충분해서 이사를 가고 싶은데 돈이 부족했다. 어떻게든 구해보려던 차에 어느 날 시어머니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통장 하나를 내미셨다.

 지금 66세이신 어머니는 60세이신 2005년도부터 노령연금을 받아오셨다. 어머니께서는 89년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하셔서 15년 넘게 근무를 하셨기 때문에 얼마의 국민연금이 다달이 지급되고 있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그 돈을 그렇게 한 푼도 쓰시지 않고 모두 모아 두셨을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다달이 20여만 원씩 지급되는 연금에 자식들이 간간히 드린 용돈까지 모두 모아둔 통장을 선뜻 내미시는 어머니를 보며 감사한 마음과 죄송한 마음이 뒤섞여 하염없이 눈물만 났다.

 "인생은 그렇게 높고 낮은 것이 있는 게 인생이다. 올라가는 때가 있으면 내려오는 때가 있는 거란다. 항상 좋은 일만 있고 행복하기만 한 사람도 없고, 평생을 나쁜 일만 생기고 불행하기만 한 사람도 없는 거다. 내가 살아보니까 그렇구나. 힘들겠지만 잘 견뎌내렴. 잘 견뎌내면 반드시 좋은 일이 올 거야."

 어머님의 말씀은 내게 너무도 큰 힘이 되었다. 그래서 내가 앞으로 더 잘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처럼 마음이 그렇게 든든해졌다.

 그렇게 되고 보니 내가 국민연금으로 받은 혜택이 정말 결코 작은 혜택이 아니라는 게 다시 한 번 절실히 느껴졌다. 남편 장애연금으로 1년 9개월간 받은 연금이 벌써 1,400만원이 넘었고, 2013년도면 남편이 낸 연금보다 받는 연금이 더 많아진다. 거기다 어머니께서 우리에게 주신 돈도 국민연금을 받아 모아두신 돈이니, 국민연금이 없었다면 내가 정말 절실히 필요할 때 이런 도움을 받을 수가 있었을까.

 불행이 없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 누구도 자신에게 다가올 불행은 장담할 수 없는 법이다. 게다가 정말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이렇게 좌절하고 힘든 시기에 국민연금이란 희망이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했다. 나도 언젠가는 국민연금 수급자가 될 것이다. 그때는 또 얼마나 요긴하게 나에게 도움이 될까. 스스로 준비하기 힘든 미래에 대한 준비를 대신해 주는 국민연금이야 말로 내 인생의 동반자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