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일은 원래 생각보다는 몸이 앞서는 성격이었지만 스무살에 오토바이를 타다가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 부상한 이후 격한 운동은 피했고 몸보다는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느끼는 게 먼저인 사람이 됐다고 자평한다. 오랜만에 몸 한번 크게 놀렸더니 운좋게 흥행이 뒤따라온 셈이다. 이로써 박해일은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데뷔한 이후 10년간의 영화배우경력에서 출세작이기도 했던 '살인의 추억'(500만명)과 '괴물'(1300만명), '이끼'(400만명) 등 굵직한 흥행작을 여러 편 갖게 됐다.
'최종병기 활' 이전 김한민 감독과는 '극락도 살인사건'에서도 한번 호흡을 맞춰봤다. 이 작품 역시 큰 흥행은 아니지만 공포스릴러영화로선 꽤 괄목할만한 관객수(180만명)를 기록했고, '연애의 목적'도 170만명을 동원하면서 알찬 성적을 거뒀다.

'흥행배우'로서도 출연작마다 제 몫을 해냈지만 박해일이 보여준 연기의 스펙트럼도 다양하고 폭넓다. 무명배우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데 도약대가 됐던 '살인의 추억'에선 평범해 보이는 청년이지만 속내를 전혀 알 수 없는 소름끼치도록 냉정한 연쇄살인 용의자 역할로 단번에 감독들이 주목하는 배우로 떠올랐다. '인어공주'에서처럼 성실하고 자상한 남자의 모습이 있는가하면 '연애의 목적'처럼 음흉하고 능청스럽게 여자에게 '들이대는' 인물도 있었다. '이끼'에선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파헤치는 용의주도하고 정의감 넘치는 남자였고, '극락도살인사건'에선 역으로 비밀을 감춘 음모의 주인공이었다. '괴물'에선 입만 열면 불평에 불만이지만 현실에서 무기력한, 운동권 출신 백수 역할도 썩 훌륭하게 해냈다. 일제 강점기가 배경인 '모던보이'에서 철없고 놀기만 좋아하는 한량, 지식인 역할도 박해일의 연기경력에서 빼놓을 수 없다.

로맨틱 코미디와 휴먼드라마에서 공포스릴러, 액션 영화까지 출연작의 장르도 각양각색이다. 박해일의 얼굴엔 소년이나 신참자의 앳되고 어리숙한 표정이 있는가하면 유들유들 넉살좋은 '허세'도 언뜻언뜻 떠오르고, 때론 바닥을 짐작할 수 없는 냉혹한 일면도 감추고 있다. 방송 촬영부 보조부터 어린이 극단을 거쳐 대학로의 연극무대에 섰고, '청춘예찬'이라는 걸출한 작품으로 발견돼 영화계에서의 10년. 지난 2006년엔 결혼했고 2010년엔 첫아들도 얻었다. 어느덧 30대 중반, 아빠가 된 만큼 세상을 보는 시각도 작품에 임하는 태도도 조금씩 달라지지 않았을까. '나이가 들고 경험과 시행착오도 쌓이다보면 예전과는 다른 시각들이 생기겠죠. 이제는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도 넓고 깊어져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요.' 그래도 박해일은 '지금은 돌이켜 생각하기 보다는 앞을 보고 달려가는 시간'이라고 했다.



"늘 돌아보면 뼈에 사무치게 후회되는 기억이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다 잊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 축구선수가 페널티킥이나 승부차기를 실수한 기억을 떠올리다 보면 그 공포감 때문에 게임을 망치는 경우가 많잖아요? 자신의 실수를 되새기다 보면 트라우마(정신적 상처)가 돼서 다음 경기에는 독약이 되곤 하죠. 그래서 저는 지금은 그런 과거의 기억을 마음 속에서 지워버리려고 합니다. 물론 더 먼 훗날에는 앨범 꺼내놓고 지난 사진을 열어보듯 되새겨보는 날도 있겠지만 말이죠. 그런 날은 최대한 늦게 찾아왔으면 좋겠어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