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한류'는 브라운관의 옷을 입고 있었다. 1996년 중국에서 인기를 끈 한국 드라마는 일본, 중앙아시아, 유럽과 아프리카 등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일본인은 다양한 '사마'들을 섬기기 시작했고, 이란에서는 90% 이상의 시청자가 <대장금> 앞에 모여 앉았다. 박찬욱, 김지운, 봉준호 등 '젊은' 감독들의 스타일리시한 영화들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의 한류는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세계인을 공략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한류의 인기는 시드는 듯했다. 이런 상황에서 K-Pop이 화려하게 등장했다.

제2의 한류 열풍 중심에는 K-Pop의 아이돌이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아이돌은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핵심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은 아이돌 현상을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음악에서 음악성이 사라지고 비주얼만 남는다는 게 근심의 요지였다. 뛰어난 외모의 아이돌은 음반 시장을 넘어 드라마와 영화에도 진출했다. 사람들의 걱정은 더 심해졌다. 아이돌이 영화와 드라마 시장을 망가뜨리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돌의 K-Pop이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아이돌 주연의 드라마가 새로운 한류 열풍을 만들기 시작했다.

전 세계에 부는 K-Pop의 바람은 확실히 뜨겁다. 올 11월에는 72개국에 생중계될 '전 세계 K-Pop 경연대회'가 우리나라에서 개최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대회의 세계 예선이 진행되고 있다. 소녀시대가 영국의 가판신문 1면을 장식하는가 하면, 카라와 레인보우 등 다양한 K-Pop 그룹이 일본의 오리콘 차트를 점령하고 있다.
그런데 K-Pop 이전에도 특정한 나라의 음악이 세계 시장을 휩쓴 사례는 다양하다. 특히, 영국음악이 (세계와) 미국 시장을 강타하는 건 아주 일반적인 현상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1964년 비틀스를 시작으로 1966년까지 롤링스톤스, 더 후, 더 킹크스 등 영국 대중음악이 미국 빌보드 차트를 점령하면서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란 용어가 생겨났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1964~1966년 사이의 특정 사건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였던 브리티시 인베이전이, 영국음악의 세계적 대중화를 뜻하는 보통명사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비틀스 이후에도 핑크 플로이드나 킹 크림슨 등의 프로그레시브 록그룹, 오아시스와 블러 등의 모던 록그룹이 세계 음악시장을 주도해나갔다.
K-Pop과 아이돌은 분명 한류의 중요한 자산이다. 하지만 아이돌만으로 한류를 유지하는 건 위태로운 일이다. 영국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장르와 스타일은 계속 변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아이돌만이 아니라 다양한 음악이 늘 공존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가수다>나 <불후의 명곡> 등의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00년대 초반 드라마와 영화, 2010년대 K-Pop과 드라마의 시너지에서도 알 수 있듯 문화는 늘 함께 가야 한다. 다양한 문화 양식이 서로를 보완할 때 한류는 더욱 튼튼하게 성장할 수 있다. 최근 여러 분야에서 한류 열풍이 부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의 르 클레지오는 한국 영화의 저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한국 문학의 힘을 강조했다.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인이 황석영에게 보내는 관심과 찬사는 상상 이상이다. 2009년 프랑스의 대표 일간지인 <르몽드>가 신문의 한 면 전체를 황석영에 할애할 정도였다. 황석영의 <심청>은 프랑스에서만 700만 부 이상 판매되었고, 이승우의 <생의 이면>이나 신경숙의 <외딴 방>, 김영하의 <빛의 제국>도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끈 소설이다. 한국 문학은 미국 시장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뉴욕타임스>에 소개되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우리의 공연도 세계의 주목을 받는다. 대사 없이 주방기구로 감동을 전하는 <난타>는 1999년부터 세계를 순례하고 있다.
1990년대 홍콩 누아르는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영웅본색>, <첩혈쌍웅>, <지존무상>은 한국의 갑남을녀는 물론 미국의 타란티노까지 설레게 했다. 하지만 그들은 오래가지 못 하고 시장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함께 세계 시장을 누빌 동반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K-Pop의 인기가 길게 이어지길 빈다. 아이돌만의 K-Pop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모든 가수와 모든 음악장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세계 속의 주인공으로 성장했으면 한다. 이를 위해선 우리가 아이돌뿐만 아니라 공연, 문학, 게임, 음식 등 다양한 우리 문화에 더 큰 관심을 보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다양성이 촘촘하게 엮여 깊고 굳건한 뿌리가 될 때, 한류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