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황금빛으로 빛나는 순천만

순천만은 전라남도 순천시, 여수시, 고흥군으로 둘러싸여 있다. 고흥반도와 여수반도 사이를 여자만(汝自灣)이라고 하는데 여자만에서도 깊숙하게 들어간 순천 쪽 갯벌 습지 일대가 순천만이다. 800만 평에 이르는 갯벌에는 갈대가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데 갈대밭만도 70만 평에 이른다. 발달한 갯벌과 갈대 사이에 먹잇감이 풍부한데다가 사람들의 손길을 피해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으니 흑두루미를 비롯한 희귀철새들도 많이 몰려든다.
국내 최대의 갈대습지, 세계 5대 연안습지, 철새들의 낙원, 연안습지로는 전국 최초의 람사르 협약 등재,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최우수 자연경관, 사진작가들이 선정한 10대 낙조 중의 하나……. 순천만이 국내외로부터 얻은 찬사는 한둘이 아니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순천만이지만 그 중에서도 갈대가 황금빛 옷으로 갈아입는 가을엔 단연 백미라 할만하다. 바람을 타며 춤추는 황금빛 갈대의 춤사위에 관광객들은 탄성을 지른다. 순천만의 갈대군락은 크게 두 곳으로 나눌 수 있다. 바닷가 쪽은 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워 철새들의 보금자리가 되고 있고 용산전망대 가는 길엔 목재 데크 산책로가 놓여 있어서 남녀노소 편하게 갈대들의 군무를 감상할 수 있다.
산책로를 끝까지 따라가면 용산전망대로 이어진다. 용산전망대는 순천만의 경관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명소다. 고작 1km 정도의 산행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을 경험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특히 이곳에서 바라보는, ‘S’자 물길 위로 떨어지는 낙조는 국내 최고의 석양 풍경으로 손꼽힌다. 황금빛으로 물든 물길 위엔 간간이 생태체험선이 물살을 가르며 드나든다. 마치 천상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이다. 그런데 발 아래 펼쳐진 풍경도 천상처럼 아름다우니 천상 천하의 경계를 알 길이 없다.
순천만에는 지상 3층 규모에 4개의 전시실을 지닌 자연생태관이 있어 함께 둘러보면 좋다. 1층 로비에 들어가면 커다란 흑두루미 가족이 반긴다. 원래 몸길이 1m 정도 되는 새이지만 로비의 흑두루미는 2~3층 높이의 초대형 모형이다. 세계적으로 10,000여 마리에 불과한 희귀새이기에 더 자세히, 더 크게 보란 뜻일까. 갈대숲 산책로와 용산전망대에서 순천만의 겉을 봤다면 자연생태관에서는 그 속을 봐야할 것이다. 자연생태관에는 천문대 시설도 있어서 천년 전설이 빛을 발하는 별자리까지 올려다볼 수 있다.

남도 최대 규모의 순천 아랫장

농산물과 수산물, 여러 가지 물자가 풍요로운 순천이라 시장도 발달했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5일장도 여럿이다. 매 2일과 7일에 열리는 ‘아랫장’이 규모가 가장 큰데 국내 최대라는 성남 모란5일장에 견줄 만하다. 처음 시장이 형성된 것은 1960년대 초반으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 원래는 터미널 근처에서 열렸다고 한다. 지금의 자리로 장마당이 옮겨지게 된 것은 1977년 수해로 인해 상점들이 대거 침수되면서이다. 당시 IBRD(국제부흥개발은행) 차관으로 풍덕동에 콘크리트로 건물을 지으면서 상인들을 유도시켰다. 그렇게 형성된 지금의 아랫장은 보성, 여수, 구례 등 주변 고을 뿐 아니라 전국에서 몰려드는 대형 오일장으로 성장했다. 보통의 5일장이 계속 위축되어가는 반면에 순천의 아랫장은 지금도 계속 외곽으로 번져나가는 게 특징이다. 순천시에서 파악한 규모로는 상가가 200여 곳, 좌판이 700여 곳으로 모두 합하면 900여 곳이라는데 현장을 세세하게 둘러보면 이 숫자가 무의미함을 깨닫게 된다. 농산물, 수산물, 임산물 그리고 잡화들을 장날에 맞춰 바리바리 싸가지고 나오는 지역 주민들의 좌판은 일일이 세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비녀를 꼽은 채 곱게 단장한 모습으로 좌판을 벌이는 할머니, 물건 값을 치루기 위해 허리춤 깊숙한 곳에서 지갑 대신 돈주머니를 꺼내는 할머니, 도포자락에 갓을 쓴 채 사주관상, 명리학 책을 팔고 있는 할아버지……. 다양한 모습의 상인과 손님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가 있다. 마치 시간이 멈춘 세상 같다. 거래되는 품목도 다양하다. 보성에서 건너 온 올벼쌀과 꼬막, 목포의 먹갈치 등 남해안의 특산물들이 많다. 남도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은 낙지도 많고 제철을 맞이하여 단감을 가지고 나온 상인들도 많아 대로변이 노랗게 빛날 정도다. 구워서 간장양념에 무쳐 먹으면 맛이 고소하다는 ‘대갱이’라는 말린 물고기도 눈길을 끈다. 대갱이는 ‘운고지’라고도 하는데 정식명칭은 ‘개소갱이’로 망둑엇과의 물고기다. 가을날의 시장은 풍요로움이 넘친다. 시장 속을 거닐며 이런저런 풍물을 구경하는 것, 그러다가 선뜻 충동구매에 몸을 맡겨보는 것도 여행의 쏠쏠한 즐거움 중 하나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