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희끗희끗하고, 돋보기 너머로 보이는 깨알 같은 메뉴판을 들고 다니는 동료들이지만 연리지처럼 같은 꿈을 갖고 사는 사람들로 이곳에선 일명 모두가 종업원이자 사장님이다.
간혹 손님들 중에는 나의 주문을 뒤로 한 채 질문을 쏟아내기 바쁘다.
“아니 어떻게 노인들이 이런 곳에서 일해요?”
“사장님이세요? 종업원이세요?”
“여기 커피전문점 맞죠?”
“어르신,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너무 멋지고 보기 좋으시네요.”
손님들 덕분에 나는 한사람의 직업인이기 이전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곤 한다. 내 나이 정도가 되면 사실 사람이 그립고, 일이 그리울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이런 관심과 대화가 오히려 즐겁고 일하는데 활력이 되고 있다.


작년 이맘때쯤 바리스타 교육을 받는답시고 어색하게 찾아왔을 당시만 하더라도 나는 커피종류도 모르고, 에스프레소의 단맛과 신맛을 느끼고 구분할 수 있는 미각과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또한 커피이름조차 제대로 외우질 못해 애먹기도 하고, 주문내용과 다른 메뉴를 만들어 손님 앞에 내 놓기도 하고, 주문한 메뉴를 다른 테이블 손님에게 드리기도 하고, 주문을 받고 난 후 뒤돌아서면 까먹기 일쑤였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2년 차 접어든 지금은 어느덧 에스프레소 뽑아내는 솜씨가 보통이 아닌 전문직업인이 되었다.
이렇게 되는 과정 속에 나는 매달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이라는 숙련기간이 있었다. 매달 열리는 커피메뉴 정기테스트가 일흔이 다 된 나에겐 매번 두렵고 떨리는 순간이지만 그 덕에 가랑비에 옷 젖듯 내 머릿속에 20여 가지 커피메뉴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게 된 되었다.
집에서 여기까지 오고가는 데 2시간이 넘게 걸린다. 하지만 출근하는 발걸음이 너무 즐겁다. 집사람은 흰색 와이셔츠 다리는 것이 귀찮다고 가끔 투정 아닌 투정도 부리지만 다음에 기회가 되면 자기도 꼭 일해보고 싶다며 커피 이름부터 기계 명칭까지 혼자서 공부까지 하고 있다.

‘나우’는 순수 우리말로 ‘조금 많이, 낫게’라는 뜻이며, 영어 ‘NOW’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현재’, ‘지금’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오늘을 어제보다 더 낫게, 지금을 어제보다 더 활기차고 가치 있는 시간으로 만들 수 있는 곳”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나에게도, 이곳을 찾은 모든 이들에게도 과거가 아닌 현재의 삶이 더 풍요롭고 향긋해지길 바란다.

2011년 8월 어느날 카페 나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