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땅 열하의 서당에 늙은 훈장이 있었다. 훈장은 열세 살짜리 어린아이와 일흔세 살의 노인을 앉혀 놓고 글을 가르쳤다. 훈장이 연암에게 말했다.
“저 노인은 손자가 다섯, 증손자가 둘이 있습니다. 그런데 매일 찾아와 강의를 듣고는 돌아가서 다시 손자들에게 가르쳐 준답니다. 어찌나 열심히 배우는지 참 놀랍습니다.”
이에 연암은 감탄한다.
“늙은이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어린이는 업신여기지 않는구나!”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나오는 장면이다. 18세기에는 평균 수명이 마흔 살 전후였던 점을 고려하면, 72세 노인은 오늘날로 치면 100세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 노인이 배움에 열심이었다. 이 나이에 무슨 공부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이 들어도 배워야 한다. ‘이 나이에’는 누가 정해놓은 한계가 아니라 스스로 정해놓은 한계다. 모두가 한계라 생각해도 내가 한계로 인정하지 않으면 한계란 없다.
『열하일기』의 노인처럼 배움 앞에서도 나이란 숫자에 불과할 수 있다. 나이 들었다고 인생이 내리막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이 들수록 더욱 빛나고 강해지는 부분도 있다. 이를 ‘에이징 파워(aging power)’라고 하는데,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는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에서 세월을 이기는 장사로 에이징 파워를 역설한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 근기(根氣),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원숙미, 폭넓은 인맥을 통한 정보력 등은 나이에서 나오는 힘이다. 그런 에이징 파워는 젊은이가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나이의 열매’다.
“대개 위대한 국가는 젊은이들 때문에 와해되고, 노인들에 의해 회복된다.” 로마 시대 정치가 키케로의 말이다. 젊은이는 활력이 넘치지만 지혜롭지 못하고, 노인은 활력이 부족하지만 지혜로운 까닭이다. 노인에게는 노인만의 근기와 지혜와 원숙미가 있다. 이것들은 무언가를 배우고 공부하는 데도 더없이 훌륭한 자산이 된다. 정서적으로 공부에 더 몰입할 수 있고, 풍부한 경험이 창의적인 공부를 가능하게 한다. 물론 젊었을 때보다 성취감도 훨씬 크다. 젊은 시절에는 배움보다 더 역동적이고 활기찬 것들에 눈길을 빼앗겨 배움에 집중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정적인 것들에 눈길이 미치기 마련이다.
배움에는 때가 있다, 배우고 싶어도 머리가 안 돌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핑계를 대지만 머리가 둔하다는 건 어디까지나 변명일 뿐이다. ‘힘을 쓰는 근육’은 쇠약해지더라도 ‘생각하는 근육’은 쇠약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소크 의학 연구소는 72세 노인의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신경 세포가 계속 생성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여기서 그 노인의 직업이 중요한데, 그의 직업은 바로 끊임없이 공부하는 교수였다. 그러니까 나이와 상관없이 공부를 계속하면 해마의 신경 세포는 계속 생성될 수 있다.
한마디로 머리는 쓰면 쓸수록 좋아진다는 것! 따라서 머리가 둔해지는 건 나이 들어서가 아니라 공부하지 않아서다. 나이 들어도 배워야 행복할 수 있다. 조지 베일런트 하버드대 교수는 『행복의 조건』에서 건강한 노년을 부르는 7가지 요소를 제시한다. 하버드 졸업생 300명과 고졸 중퇴자 500명 등을 73년 동안 추적 조사한 끝에 베일런트 교수는 7가지 요소가 건강한 노년을 결정한다고 결론 내린다. 바로 금연, 적정 체중, 규칙적인 운동, 안정적인 결혼 생활 등이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그는 여기에 ‘평생 교육’이라는 요소를 포함시켰다. 계속 공부해야만 나이 들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 공부해야만 성숙한 삶의 결실을 얻는 동시에 천진난만한 호기심을 되살려 활력 있게 살 수 있기 때문이란다.
정년이 짧아지고 수명이 늘어나는 오늘날, 평생 동안 하나의 직업을 유지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는 “인생을 이모작하라.”고 충고한다. 50대 전의 인생이 전반기라면, 그 이후는 후반기다. 예전에는 딱 한번 농사짓고 끝났다면 오늘날은 다르다. 전반기에 한 번 짓고, 후반기에 한 번 더 지어야한다. 아니, 급변하는 사회에서 이모작이 아니라 삼모작, 사모작도 가능하리라. 이모작이 가능하려면 땅 힘이 넉넉해야 한다. 넉넉한 땅 힘이 어디에서 나오겠는가? 거기에 바로 배움의 역할이 있다. 배움은 후반기 인생을 다시 시작하게 하고, 또한 풍요롭게 만드는 거름과 같다. 거름도 치지 않은 밭에서 결실이 풍요롭길 기대할 수는 없다.
첫째, 스스로 늙었다고 느낀다. 둘째, 자신이 배울 만큼 배웠다고 여긴다. 셋째, “이 나이에 그런 일을 뭐 하러 해.”라며 투정부린다. 넷째,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고 느낀다. <…> 일곱째, 좋았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미국 미네소타 의학 협회가 내린 노인의 정의다.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다고 여기면서 과거를 그리워하느라 현재를 허비한다면, 그건 노인의 삶이다. 그러나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여기며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산다면, 노년기는 없다. 단지 후반기 인생이 있을 뿐이다. 노년기를 살 것인가, 후반기를 살 것인가는 운명이 아니라 선택이다. 지금 선택하면 된다. 낡고 오래된 것이라고 모두 썩거나 상하는 건 아니다. 포도주가 오래되었다고 그 맛이 시어지지 않듯이 나이가 들었다고 인생이 부패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인생의 깊은 맛은 에이징 파워처럼 나이 들수록 우러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