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CNN은 2010년의 대표적인 실패작으로 아이폰4(정확히는 아이폰4의 안테나)와 3DTV를 꼽았다. 특히 거실에서 이상한 안경을 쓰고 봐야하는 TV에 4,000달러를 투자한다는 건 상식 밖이라고 CNN은 말했다.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좀 더 곰곰이 생각해보면 CNN의 전제에 단서를 붙일 필요가 생긴다. 2010년 초반, 3DTV는 월드컵 특수를 맞아 어느 정도 인기를 끌었다. 하반기에는 경기 침체와 3DTV의 지나치게 비싼 가격 문제가 겹치면서 판매량이 많이 줄었다. 그러니 2010년의 3DTV는 실패작이라기보다 기대에 미치지 못 한 제품 정도로 파악하는 게 옳을 것이다. 연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세계 최대의 소비자가전쇼「CEX 2011」에 TV는 다시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강화된 3D 성능, 스마트TV 기능의 도입, 하락한 가격의 세 요인이 맞물리면서2011년 신종 TV에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신종 TV의 첫 번째 특징은 ‘입체’라는 것이다. 3DTV가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와 현실 세계에 처음 등장한 건 2009년 일이다. 세계가전박람회인 ‘IFA 2009 베를린 가전쇼’에 첫선을 보인 3DTV는 이내 세계의 관심을 모았다. 2010년에는 300만 대 이상의 3DTV가 판매되었고, 올해에는 그 3배인 1,800만 대 이상, 2015년에는 1억 대 이상이 판매될 것으로 업계는 예측하고 있다.

3DTV의 원리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두 눈을 번갈아가면서 한쪽씩만 떠보자. 보이는 사물의 위치가 조금 바뀌는 걸 느끼게 될 거다. 당연한 일이다. 물체에서 왼쪽 눈까지의 거리와 오른쪽 눈까지의 거리가 조금은 다를 테니 말이다. 우리가 세상을 입체로 보는 건 각기 다른 두 개의 신호를 두 눈으로 받아들인 후 뇌에서 조합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시각정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스테레오 사운드는 양쪽 귀에 다른 소리 신호를 주고 뇌에서 입체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설계한 청각 시스템이다. 3DTV와 스테레오 사운드는 동일한 원리를 다른 감각으로 받아들이도록 한 것에 불과하다.

3DTV는 두 눈에 각기 다른 정보를 흘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먼저 두 눈에 각기 다른 컬러 필터를 씌워서 좌우가 다른 정보를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 이러한 적청안경방식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한다. 하지만 풀HD의 고화질 세계에 이 방식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전자제품 업체는 편광 방식과 셔터글라스 방식을 개발했다. 편광 방식 TV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영상 정보를 흘린다. 그리고 좌우 렌즈가 다른 각도의 빛을 차단하도록 설계된 편광 안경을 쓰면 두 눈에는 각기 다른 정보가 주입된다. 셔터글라스 방식은 더욱 간단하다. TV가 미세하게 다른 영상 정보를 번갈아가면서 보낸다. 그런 전용 안경의 렌즈가 좌우 번갈아가면서 열리고 닫히길 반복한다. 시차 때문에 두 눈은 다른 정보를 받게 된다. 두 가지 방향의 영상 신호를 분리해서 보내야 하는 편광 방식은 TV 본체의 가격을 높이지만 안경은 저렴하고 가벼워진다. 이와 반대로 안경의 역할이 큰 셔터글라스 방식을 채택하면 TV 가격이 저렴해지는 대신 비싸고 무거운 안경을 써야 한다.

TV의 두 번째 변신은 스마트 기능에 있다. 인터넷 회선으로 TV를 본다고 해도, 예전에는 정보의 흐름은 일방적이었다. 하지만 스마트TV를 설치하면, 시청자는 TV를 컴퓨터처럼 양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다. TV의 프로그램을 원하는 시간에 보는 건 당연하다. 여기에 증권소식 등 원하는 정보를 업데이트하거나, 메일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스마트폰처럼 SNS 기능을 통해 TV를 중심으로 네트워킹이 가능해진 거다. 아직 스마트TV의 기능은 제한적이지만 가능성은 활짝 열려 있다. 앞으로는 드라마를 보면서 소품을 바로 구매하거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면서 리모컨으로 좋아하는 가수에게 투표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입체 영상과 네트워킹 기능은 TV의 매력지수를 확 높여줬다. 하지만 비싼 가격이 문제였다. 여기에도 해답이 나오고 있다. 두 성능 가운데 하나를 제외해서 가격을 낮춘 제품이 등장하고, 통신사와의 제휴를 통해 TV를 무상 임대하는 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TV는 휴대폰이나 컴퓨터와 달리 개인용이라기보다 가정용 백색 가전제품으로 인식됐다. TV가 스마트해지고 입체 영상을 마구 뿜어내도 이런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2000년대 이후 TV가 컴퓨터의 자리를 대치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개인들이 파편화된 삶에 피로를 느끼고 가족으로 다시 돌아와서 뭉칠 것이라는 희망을 담고 있다. TV에 추가되는 새로운 기능을 골치 아프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처음엔 낯설더라도 가족과 함께라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고, 의미 있는 제품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TV의 변신은 무죄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