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일곱 청춘, 윤은혜가 간다. 가수출신 배우. 요새말로 하자면 1세대 ‘연기돌’(연기하는 아이돌 스타)인 윤은혜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올들어 영화에 이어 드라마까지 거침없는 행보다.
“내년까지 죽 달려볼 생각이에요. 예전에는 매사에 지나치게 조심스러웠는데 이제는 그럴 때가 아닌 거 같아요. 과거에는 내 스스로 100% 확신이 들지 않고 실패하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 같은 생각에 내게 더 잘 맞는 옷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 적도 있었어요. 이제는 주연도 좋고, 조연도 좋고, 카메오도 좋으니 무조건 많은 작품을 하고 싶어요.”
한 달 전 영화 개봉을 즈음해 만났던 윤은혜는 의욕에 넘쳐있었다. 그러더니 바로 드라마에 주연으로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호텔을 경영하는 재벌 2세 현기준(강지환 분)과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문화관광부 5급 공무원으로 일하는 공아정(윤은혜 분)의 이야기를 그린 경쾌한 로맨틱 코미디다. 좋은 집안에 고시를 거친 재원이지만 엉뚱한 성격을 가진 여주인공이 바로 윤은혜의 몫이다. 윤은혜의 장기와 장점이 십분 발휘될 수 있는 배역이다. 선머슴같은 씩씩하고 해맑은 성격 이면에 여리고 여성적인 면모, 평범한 듯 특별함. 설정은 드라마와 여러모로 다르지만 영화 ‘마이블랙미니드레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관객들하고 가까운, 평범한 20대를 대표하는 역할이에요. 영화 홍보문구로는 ‘된장녀’라고 소개돼 있지만 당당하지도 화려하지도 못한 인물이죠. 외모도 경제력도 연애도 조금씩 부족한 친구, 남들에게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애쓰지만 결국은 ‘내 길이 아니야, 잘못된 꿈을 꾸고 있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 여자에요.”
그렇다면 윤은혜의 실제 성격은 어떨까.
“씨름에서 이겨도 부끄러워하는 성격이었어요. 첫 영화(‘카리스마 탈출기’)는 제 성향하고는 완전히 달라서 못 하겠다고 했었죠. 저는 숫기도 없고 여성성도 많은 애인데, 입이 험하고 주먹질을 해대는 남자같이 터프한 역할이니…. 연기에 ‘연’자도 모르는 애가 한두 달 준비하고 소화할 수 있는 배역이 아니었어요. ‘한 대사도 못하겠습니다’라고 했지만 결국 자신 없는 상태에서 들어갔죠. 내가 뭐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고 끝까지 거절할 위인도 아니었고 말이죠.”
윤은혜의 스크린 데뷔작 ‘카리스마 탈출기’는 가혹한 평과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리얼리티쇼의 형식을 빈 예능프로그램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하던 초창기의 윤은혜는 ‘엑스맨’이라는 코너가 소녀장사 이미지로 인기를 북돋운 스타였다. 그러나 윤은혜가 보여준 예능프로그램에서의 활약과 이미지를 빌어 기획된 첫 영화는 실패했고, ‘궁’, ‘포도밭 그 사나이’, ‘커피 프린스 1호점’ 등에서 예능이나 가수활동 시절과는 다른 자신만의 연기경력을 쌓아나가기 시작했다. 연기력 논란도 있었지만 일견 평범하고 사랑에 서툴러도 시련을 이겨나가는 씩씩하고 순수한 모습을 보여줬을 때는 큰 환호도 얻었다. 지금, 윤은혜는 팬들이 자신에게 요구하고 소비하기 원하는 연기와 이미지를 썩 잘 알고 있다. 영화 ‘마이블랙미니 드레스’와 드라마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데뷔작과는 달리 윤은혜가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인물을 만들어간 작품이다. 27살 윤은혜가 제 옷에 맞는 옷을 자기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2년여전 자신의 기획사를 만들어 ‘홀로서기’에 나선 것과 아예 관련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기획사에 소속돼 활동하면서) 그동안 오해나 상처도 많이 받았어요. 회사의 입장을 잘 알기 때문에 맞춰가려고 노력했지만 그럴수록 더 양보를 요구받았고, 불합리한 상황 때문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죠. 예를 들어 어린 나이에 애엄마 역할을 하라고 하면 할 수 없잖아요. 그럼 싸우게 되고, 저도 모르게 활동중단이네 어쩌네 하는 기사들도 나고…. 그래서 마음을 다치지 않고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집 같은 공간을 마련한 거죠.”
중3 시절 얼떨결에 아무 준비 없이 ‘해봐라’해서 오디션을 보고 베이비복스의 멤버가 됐고, 6년을 가수로 6년을 배우로 살아온 윤은혜. ‘어렸을 때 공부도 열심히 안하고 말썽 피운 기억도 없는 것이 가장 후회된다’는 그녀의 청춘은,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