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후에 가계부를 써 버릇하고 수입의 70%를 먼저 저축하며, 저축은행의 금리까지 따져가며, 재테크 관련 도서를 즐겨 읽는 나름 바람직한 주부가 되어 이제는 가계부를 쓸 필요도 없게(돈을 쓰지를 않으므로) 된 것이다. 향후 몇 년 내에 내가 원하는 지역에 적당한 평수의 새 아파트를 사리라..
올해는 얼마를 모았으니까 이제 이 정도만 모으면 된다 하고 회사 일에 지친 남편과 나를 격려했다. 향후 몇 년간은 아마도 계속 이렇게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지난 주말 내가 다니는 교회 예배시간에 고 이태석 신부의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이태석신부는 한국에서 의대를 졸업한 후 사제품을 받자마자 아프리카의 수단으로 가서 8년간 의료봉사 를 하다가 암으로 사망하신 분이다. 방송에서 그를 이렇게 소개했다. 사람이 사람에게 꽃일 수 있음을 보여주신 분이라고. 한센병 환자들의 손을 잡아주며 위로하는 모습과 톰즈 마을의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치며 희망을 보여주는 모습을 보며 눈물, 콧물을 훌쩍거리며 남편에게밖에 꽃이 되지 못하는 나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제 월드비전에 해외아동 정기후원을 신청하였다. 남편 이름으로 9만원, 내 이름으로 5만원을 신청하였다가 달마다 14만원은 많다는 생각, 부모님 용돈을 더 올려드리는 게 우선이지 않겠냐는 생각이 교차하다가 결국 남편 이름으로 3만원, 내 이름으로 3만원 후원을 신청하였다. 그래도 벌이가 있는데 이건 또 너무 작지 않겠냐는 생각, 요즘 기부금 횡령이 잦다는데 이 돈이 어디 엉뚱한 데로 새면 어쩌나 하는 생각, 그래도 기부금이니 올해 연말정산 때는 조금 혜택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또 교차한다. 딸아이 겨울 패딩을 8만 6천원에 샀는데 딸아이 옷 한 벌 값도 안되는 돈으로 이틀을 이렇게 저렇게 셈해 보고 있는 것이다. 아마 내가 기부에는 너무 초보여서 그런가 보다.
베테랑이 되면 좀더 손이 커지고 대담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 고 이태석 신부처럼 나도 가난하고 아프고 외로운 사람에게 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내가 직장에 다니다 보니 가사의 절반은 남편인 나의 몫이다. 아내가 야근하고 돌아온 다음 날 가족들 아침 식사는 나의 몫이 된다. 회사에서 감사를 받느라 늦게 퇴근한 아내가 남편을 믿고 고목처럼 쓰러져 곤하게 잠을 자는 새벽녘, 일단 서둘러 일어나 씻고 출근 복장으로 옷까지 차려입었다.
“오늘은 초간단 샌드위치다”
혼잣말을 되뇌이며 양복에 기름이라도 튈세라 꽃무늬 앞치마를 두르고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했다. 야심차게 준비한 메뉴는 감자와 계란을 으깨어 넣은 샌드위치. 이 정도면 나도 한 요리 하는 거 아닌가?하는 은근한 자부심과 함께 가슴 뿌듯함을 느꼈다. 곤히 자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아빠표 샌드위치를 식탁에 보기 좋게 차려 놓은 뒤 나도 한 개를 잡아 후다닥 덥석 먹어 치우고는 잽싸게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승용차를 몰고 나섰다. 콧노래로 상큼하게 출근을 하는 새벽길. 워낙 일찍 나선 터라 차도 덜 막히는데다 아내와 아이들이 아빠가 해놓은 맛있는 샌드위치를 먹고 만족스럽게 각자의 일을 위해 집을 나설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너무나 좋았다. 승용차가 미끄러지듯 회사 정문을 통과해 막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정문 경비 아저씨가 내 차를 제지하며 뛰어오는 게 보였다.
“잠깐만요, 윤부장님”,
“아니 왜요? 오늘은 10부제 아닌데...” ,
“저...기.. 혹시 그거”
급하게 달려와 차를 세운 경비 아저씨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은 꽃장식 붉은색 앞치마였다. 앞치마가 내 검은색 정장 양복 위에 떡하니 입혀져 있는 게 아닌가. 너무나 기가 막혀 밟고 있던 자동차 브레이크를 놓을 뻔했다.
검정색 정장 양복을 입고 그 겉에 총 천연색 화려한 꽃무늬 앞치마를 두른 부장님. 그 상태로 집에서 나와 아파트 중앙 광장을 가로질러 주차장까지 활보했고, 콧노래까지 부르며 차를 몰고 회사에 온 윤부장님. 경비 아저씨가 알려줬으니까 망정이지 이대로 엘리베이터라도 탔더라면? 등에서 식은 땀이 주르륵 정말 정신없는 하루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