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거 아부지 월급이 올랐단다. 이걸 봐라.”
지난 4월, 오랜만에 들른 친정에서 엄마는 연금 인상 안내 통지서를 먼저 내보여주셨습니다. 친정어머니께서는 유족연금을 받고 계십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이제 2년이 넘었습니다. 50년을 아버지와 살아오신 어머니께는 길고도 긴 2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어머니께서는 아버지가 남겨주신 국민연금에 기대서 살아오셨습니다.
“너거 아부지가 선경지명이 있으시다. 기억 안 나냐? 내가 너거 아부지께 국민연금에 가입했다고 타박도 했는데.”
기억이 납니다. 국민연금을 납부할 돈으로 차라리 살아생전 맛있는 것을 먹자던 어머니셨죠.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왜 하느냐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주관이 너무도 뚜렷하신 분이라, 남들의 의견보다는 아버지의 판단에 의해 일처리를 하셨는데 국민연금 가입도 마찬가지셨습니다.

국민연금 도입 초기에, 5년만 납부하면 평생 동안 연금을 받는 특례연금에 대한 홍보가 있었습니다. 그때 고향 마을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고 합니다. 연금 넣을 돈이 있으면 맛있는 것을 사먹는 것이 낫다는 쪽과 그래도 평생 연금이 나오는데 가입하는 것이 좋다는 쪽으로 의견이 갈리셨답니다. 아버지께서는 어머니의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을 납부하는 쪽으로 결정하셨습니다. 자식들이 드리는 용돈을 아껴서 월 3만원이 조금 넘는 돈을 꼬박꼬박 불입하셨죠. 저의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여러 번 타박하셨습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

“보험회사도 아니고 나라에서 하는 제도인데 그걸 왜 믿지 못하겠느냐?” 고.
그렇게 어머니의 지청구를 들으면서단한번의연체도 없이 연금을 불입하셨고 특례노령연금을 수령하게 되셨습니다. 그 돈으로 수도, 전기, 가스, 전화, 아버지의 핸드폰 요금을 모두 납부할 수 있었지요. 그때 이후로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에 대한 타박을 더 이상 하지 못하셨습니다.

어머니의 기둥이셨던 아버지의 죽음은 갑작스럽게 찾아왔습니다. 어머니가 느끼셨던 상실감은 갑작스러운 별리만큼이나 컸습니다. 표정 없는 얼굴로 헛소리까지 하시던 어머니의 상심은, 삼우제를 지내면서 극에 달했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돌아가시겠다는 말씀과 동시에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처연함도 지켜봐야 했습니다. 그 직후에는 아예 자리보전을 하게 되셨죠. 어머니께서는 ‘누운 김에 니들 아버지께 가고 싶다’는 말씀도 서슴없이 하셨습니다. 칠남매의 자식들이 ‘그러지 마시라’고 뜯어말려도 어머니의 의중은 꺾일 줄을 몰랐습니다. 우리 칠남매는 불침번을 서듯 돌아가며 시골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습니다. 국민연금에서 보내온 통지서 덕분이었습니다. 노령연금이 유족연금으로 바뀌어 매월 어머니의 통장으로 입금될거라는 통지서였죠.
“너거 아부지가 어떻게 넣은 돈인데, 이게 너거 아부지 월급인데.”
시골에 계신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아버지께서는 살아생전 돈 관리를 직접 하셨습니다. 그랬기에 어머니께서는 돈의 용처를 요모조모 나누는 일에 서투르셨습니다. 결국어머니께서는 아버지의 월급으로 생각하신 국민연금의 용처를 이렇게 결정하셨습니다.
“내가 살아서 이 돈으로 너거 아부지 산소에 나무도 좀 심고, 예쁜 꽃도 자주 꽂아드려야지. 너거 아부지가 좋아하셨던 커피도 많이 가져다 드리고. 어떠냐? 괜찮지?”

지금 어머니께서는 고향집을 지키고 계십니다. 아버지께서 남기신 농토에서 나오는 소출을 자식들 집에 골고루 보내주시고, 일주일에 한 번씩 아버지 산소에도 꼬박꼬박 다녀오십니다. 아버지께서 좋아하셨던 커피와 송편을 항상 챙겨 가시죠. 좋은 일이 있으면 아버지께 자랑을 하시고, 슬픈 일이 생기면 아버지께 넋두리를 하면서 풀고 오십니다. 명절이면 손주들에게 용돈도 주시죠.
“이건 할아버지께서 주시는 거다.”
조카들은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용돈을 주시는 것이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어머니는 그때마다 설명을 하십니다.
“할아버지께서 살아생전 국민연금이라는 저축을 가입하셨는데, 그 돈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나온단다.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주시는 것 맞지?”
그 덕분에 아이들은 국민연금이 아주 좋은 제도라는 것을 은연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딸아이도 외할머니께 들은 말이 있어서 제게 당부하곤 합니다.
“엄마! 국민연금은 무조건 잘 넣어야 한대요. 그래야 엄마 아빠도 노후에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니까 잊지 말고 넣으세요. 저도 돈을 벌게 되면 국민연금부터 챙길 거예요.”
어머니는 연금이 입금되는 통장을 아주 소중하게 간직하십니다. 자식들이 드리는 생활비와 아버지의 국민연금을 철저하게 구분하여 지출을 하시죠. 통장에 국민연금이 들어오면 어머니의 얼굴에도 생기가 들어오는 것을 저희는 자주 보게 됩니다.
“너거 아부지가 오셨다. 참 반갑데이.”
50년 지기셨던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상심으로 누워계셨던 어머니가 맞나 싶을 정도로 기운차게 살아가시는 어머니를 뵈면 국민연금이 참 고맙습니다. 어머니가 건강하게 살아가시는 이유가 되니까요. 그 덕분에 고향집에 가면 건강한 어머니가 밝은 얼굴로 맞아주시고, 저희 칠남매도 열심히 살아갈 수 있어 저희들도 국민연금을 꼬박꼬박 납입하고 있습니다.